東坊哲學院

기타/나의 수필

飛馬

경덕 2018. 2. 5. 09:30

 



 창밖엔 하얀눈이 흩날리고  계속되는 한파가 멈출줄을 모르고 있다. 

겨우내 강추위와 흐린 날씨 등으로 인하여 카메라와는 잠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사진과 관련된 카페블로그들을 서핑하고 있노라니 여기저기서 앙증맞은 봄꽃사진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산야의 이곳 저곳에서 봄꽃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 않는가?

노오란 꽃잎을 빼꼼히 내민 털괭이눈 하며 황금색의 복수초, 두귀를 종끗 올린 분홍노루귀들이 저마다의 미모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아직은 얼음장 같은 대지를 뚫고 생명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다.


  내일도 눈발이 날린다는 일기예보에 야생화 촬영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살며시 동한다. 이맘때쯤 눈이 내리면 오름 자락에는 설중복수초가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텐데...... 벌써 마음은 콩밭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하룻밤을 지새고 눈을 뜨니 과연 함박눈이 좌우상하로 흩날리고 있다. 준비했던 촬영장비를 채비하고는 애마를 몰고 절물휴양림으로 향했다. 절물휴양림에는 이맘때쯤이면 복수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더욱이 오늘처럼 함박눈이 흩날리는 날 눈속의 복수초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을 터이다. 도착해보니 과연 설중복수초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님을 만난 기쁨에 비할 수 있으랴.


  눈 덮인 계곡의 사면(斜面)에 잠깐 비친 햇빛을 받은 설중복수초를 정성으로 촬영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도로에서 조금은 깊숙이 들어간 어느 사찰로 나도 모르게 핸들을 틀게 되었다. 수십년전 20대 초반에 심신이 피폐한 상태로 이 산사에서 휴양을 하던 때가 불현 듯 나의 뇌리를 스치우는 것이다.

그때 마침 또래의 야윈 얼굴에 움푹패인 쌍꺼플눈의 다소곳한 여인도 나와 같은 연유로 이곳에서 휴양을 취하고 있었다.

몇 일을 지내고 나자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는 사이로 진전하게 되었다. 주지스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불법도 조금씩 익히면서 건강식과 요가까지도 익히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엮어 가면서 몸과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노라니 이제 한 이불속에서 서로를 마주보면서 서로의 다리를 마주 뻗고는 어린애처럼 낮은 목소리로 이다리 저다리 개청개....”를 하면서 부드러운 손 도닥임으로 상대의 다리를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병자상린의 사랑의 속삭임도 깊어만 갔다. 뿐만 아니라 설중복수초처럼 다소곳한 미소로 그녀는 얼어붙고 피폐할 대로 피폐한 나의 심신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앓고 있던 지병으로 홀연히 먼나라 여행을 떠나고 만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말띠였다. 오직 그녀에 대한 상념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나였기에 슬픔이 여간 크지가 않았다. 외로움 속에 나만을 남겨둔 채로 홀로 떠나버린 야속한, 애틋한 나의 飛馬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녀에게 주었던 것은 오직 영육간의 상처밖엔 없었는데......

오늘도 이산사의 뒷자락에는 노오란 복수초가 옛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주고 있다. 그녀와 함께 따스한 햇살 머금은 저 노오란 복수초의 꽃잎에 입맞춤 하며 미소로 대화를 나우었었지 않았던가.

그래서 복수초의 꽃말이 영원한 행복도 되고 슬픈 추억도 되는 것인가?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본네트와 지붕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그녀와의 추억이 흰 빛으로 쌓여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스님께서 하신 악은 선의 스승이다라는 말씀을 다시한번 음미해 본 다.

 

                        


   

'기타 > 나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나기  (0) 2020.05.12
노출  (0) 2020.03.27
동백꽃  (0) 2017.03.30
과유불급  (0) 2017.01.13
여인과 제주 (월간 "국보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작)  (0) 201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