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坊哲學院

기타/나의 수필

과유불급

경덕 2017. 1. 13. 15:37

  오랜만에 아내랑 사무실에서 함께한 시간이 길었다.

내 사무실 한쪽에 아내의 화실 겸 휴식공간을 마련했고, 아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싫지가 않다. 때로는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조언을 구할 때면 고마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제주도는 초가을도 덥다. 한나절이 되었을까, 무덥고 입안이 텁텁했다.

시원한 무엇이라도 먹어야 했기에 사무실 가까운 곳에 막내가 운영하는 GS25편의점으로 가서 빙과류를 골랐다. 모양도 맛도 종류도 다양했다. 아내는 부드러운 아이스콘을, 나는 팥 맛이 일품인 아이스바 비비빅을 골랐다.

당신은 무사 비비빅만 먹으멘?”

당신은 왜 비비빅만 잡수시냐?고 제주어로 묻는 말이다.

 내가 굳이 딱딱한 아이스바(비비빅)를 선택하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 아이스바를 접하게 되면 호기심 많았던 소년시절로 돌아간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 55년전, 아련한 추억의 꿈길을 거닐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 대신 할머님의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는 어쩌면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할머님께서는 남의 밭에 가서 보리검질(보리밭에 난 잡초), 조검질 메는 일에, 익은 보리도 베고, 조도 베고, 여문 콩도 베는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나의 학비와 용돈을 마련해 주셨다.

  여름방학 때였다. 어린 마음에도 연세 많으신 할머님의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용돈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고 이곳저곳을 다녀 보아도 어린 나에게는 구두 닦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우락부락한 형들 밑에서 시키는 일을 배워야 하고 절대 복종해야 하므로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어느날 관덕정쪽으로 걸어가는데 <향미당>이라는 아이스께끼 도매공장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머뭇거리다가 주인아저씨에게 보증금이 없다는 사정 이야기를 하고 이튿날부터 아이스께끼 장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아이스께끼통을 어깨에 둘러메었더니 아이스께끼통이 무르팍 아래까지 내려와서 걸을 때마다 다리에 스쳐서 너무 불편했다. 무겁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이스께끼통엔 50개가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용돈을 벌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나니 그런대로 참을 수가 있었다.

무더운 거리를 누비면서,

아이스께~!”

목청껏 외치느라고 외쳤지만 어떤 곳이 잘 팔리는 곳인지 몰라서 첫날에는 겨우 2통을 파는데 그쳤다. 둘째날은 얼마나 더웠던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소리 높혀 외친 덕분으로 3통을 팔 수 있었다.

  며칠을 하고 나니까 얼굴도 새까맣게 타고 목이 쉬고 지친 모습이 역력했는지 할머님께서 눈치를 채시고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면서 염려로 당근을, 훈계로 채찍까지 드시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을 쉬고 있었지만 장사하는 묘미도 느꼈는지라 방학이 끝나가자 아쉬운 마음에 이틀만 더 해서 용돈을 벌어야지 하고는 <향미당>을 찾아갔다. 지난번 경험으로 보아서 메고 다니면 온몸이 아프고 물건 가지러 왔다 갔다 하기가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5통을 리어카에 싣고 팔러 나왔다. 편하면 여러곳을 다닐 수 있고 그만큼 많이 팔리리라는 속셈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욕심이었다.

  ‘관덕정에서 동문통을 돌아서 서문통까지 리어카를 끌고 구슬프게 아이스께끼를 사라고 외쳤더니 단박에 2통을 팔았다. 이 추세라면 5통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아 들뜬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목청을 돋우면서 '관덕정'쪽으로 돌아가다가 통을 열어보았더니 아뿔사! 아이스께끼가 모두 녹아 버린게 아닌가. 반나절이 넘도록 싣고 다닌 탓이었다. 용돈 벌 욕심에 아이스께끼를 한입도 대어 보지도 못했는데...

  다음날 할머님께 2학기 책값 달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 돈으로 <향미당>에 원전을 갚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참동안 미소를 머금고 내말을 듣던 아내가, 거 봐 욕심내면 안 되어.” 하면서 소감을 피력하고는 그때 할머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셨으면 아이스께끼라고 말하는 대신 아이고 내새끼, 아이고 내 아까운 새끼라고 했을 것이라고 추억담을 마무리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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