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坊哲學院

기타/나의 수필

해송(海松)

경덕 2020. 5. 17. 21:05

4월의 둘째 날이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사무실 안으로 성큼 들어온다.

내 사무실은 동향이어서 오전의 빛도 잘 들어오지만 사무실 길 건너편에 있는 13층 빌딩 유리창으로 인하여 오후의 강한 햇살이 반사되어 쏟아지는 햇살은 무척 강하다.

오늘 오후는 왠지 나른하여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나른하기만 하다. 덩달아 반사되어 사무실을 점령한 햇살이 내 책상의 유리에 반사되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30분이다.

이런 날이면 나는 바닷바람을 쐬러 제주 국제공항 북쪽 해변의 어영 마을을 찾곤 한다. 어영마을과 비행장 사이에는 옛날 농로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산책코스로 이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간지점 길 북쪽에는 5그루의 해송이 그림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 소나무를 배경으로 석양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카메라로 소나무가 품은 석양을 담곤 한다. 4월에는 태양이 지는 방향과 이 소나무와의 각도가 알맞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나의 사무실에서 이 소나무가 있는 곳까지는 약 6km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승용차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어서 4월이면 자주 찾는 곳이다.

차를 몰고 어영으로 바람 쐬러 가기로 하고 카메라도 챙겼다.

습관적으로 해송이 있는 곳에 차를 멈추고 차창을 여니 소금기 가득한 바다 내음이 밀려온다.

오늘도 역시 예전과 같이 지는 해를 소나무가 포근하게 품고 있다.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벤치에 앉아 안고 뜨는 비행기와 어우러진 한라산도 조망해 보고는 했지만 역시 소나무가 품은 저녁놀만큼은 못하다. 오늘 따라 왠지 소나무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70여년전 이 지역에서도 끔찍한 학살이 행해졌던 곳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일까.

 

소나무 밑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소나무들이 그날의 산 증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까지에 이른다. 어떤 슬픔과 아린 상처들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새까만 솔똥(솔방울)을 두 손 가득히 줍고는 바라보면서 솔똥 하나하나에 그 당시 희생된 분들이 아른거리며 오버랩된다..

 

센티한 마음도 달랠 겸 자리를 옮겨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서 해안도로 옆에 주차를 하고는 벤치에 앉았다. 어영의 해변에는 낚시꾼들이 갯바위에서 고기를 낚고 있을 뿐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멀리 도두봉과 등대가 보인다. 저무는 해, 황혼의 저무는 햇살을 받아 하늘과 바다가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낚시꾼의 낚싯대에는 태양이 걸려 있다, 태양을 낚아 올리는 듯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늘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황홀하다.

 

황홀한 기분으로 반짝거리는 황금빛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수평선이 하루해를 삼키고 있었다. 갈매기 두 마리가 끼륵거리며 하늘을 날고 도두봉 등대에 불이 보인다. 순식간에 하루해가 숨을 거두고 하늘과 바다는 황금빛에서 검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70년전 오늘 저녁도 하늘과 바다가 저렇게 검붉은 핏빛으로 물들었었을까?

해가 진 바다에는 집어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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